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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 (The Thirteenth Floor)
감독 조세프 루스낵 출연 크레이그 비에코, 그레첸 몰, 빈센트 도노프리오, 데니스 헤이스버트, 스티브 슈브, 아민 뮬러-스탈 제작 1999 독일, 미국, 98분 평점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는 가상의 세계는 아닌가.?(영화스포일러를 포함되고 있습니다.)
매트릭스와 함께 회자되는 영화을 이제서야 보게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불교철학을 생각하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이 세계 즉 우리의 현상적 세계는 가상적 세계로서 몽환의 세계로 규정한다. 우리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서 오온이라는 다양성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가합된 존재로 우리 존재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13층은 이러한 우리의 세계를 우리보다 과학과 진보된 개체에 의해 마련된 가상시뮬레이션이 가미된 세계로서 전원을 꺼버리면 우리라고 생각되는 세계 전체가 없어져 버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후에 가상적 세계와 현실세계의 규정이 모호해질 수 있는 엔딩크레딧을 보면서, 더 높은 차원의 세계의 이행을 통한 현실세계의 믿음과 긍정 또한 그 자체도 가상적 현실성을 가진 세계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가상적 현실을 벗어난 더 높은 차원에서의 현실긍정이 그 자체로서 다시 가상의 체계로 부정되고 다시 이것이 긍정의 세계로의 추구라는 욕망의 추구가 가상체계의 부정과 다시 현실세계의 긍정이라는 무한순환의 오류에 빠지게 됨을 밝혀주고 있다.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던 영화로 불교적인 관점에서 영화를 생각해 볼 수가 있었다. 불교의 존재론을 영화 사이사이에서 살펴볼 수가 있었다. 현상계를 가립적인 것으로 보는 것 즉 영화에서 가상시뮬레이션으로 자신이 실제세계라고 생각하고 이것에 대한 모조품으로 가상세계를 만들어 놓았지만 정작 가상의 그 세계의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세계가 가상의 세계인줄 모르고 현실세계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그러한 가상의 세계의 사람들은 코드 하나만 뽑으면 없어진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들도 자신들의 세계가 가상의 세계임을 깨달았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존재목적을 규정받기 위해 자신들의 세계를 소멸하지 말아달라는 부탁들 하게된다.
하지만 영화의 반전은 이러한 가상의 세계를 관리하고 지배할 것 같은 그 자신들도 자신들 보다 높은 차원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임을 인식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나중에 밝혀지지만 말이다.
불교에서도 우리의 존재가 가상의 가립된 존재로서 무아라는 용어를 쓴다. 즉 실체적인 내가 없다는 뜻에서 무아(無我)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라는 존재를 실체화시켜 나라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심원화시키며 이것이 나와 타라는 개념적 구분과 더불어 이를 통한 상대적 잣대가 성냄과 욕심 어리석음을 발생시켜 고통을 발생시킨다고 말하고 있다.
13층은 불교적 의미에서 살펴보자면 주인공들도 이 세상의 존재에 대한 실체가 실체 없음을 아는 무상성에 대한 조망이 열어지게 되었지만. 이러한 실체 없음을 알고 이를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길에 대한 조망이 열어지지 않고 이를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인 깨달음의 길을 통한 완전한 행복 즉 고통받지 않는 윤회적 삶에서 벗어나는 길은 제시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점에서 불교의 근본교리인 4성제와 비교를 해보았을 때 이 세상이 고통이라는 원리 즉 고성제에 대한 인식적 조망이 생겨났지만 이러한 고통이 일어나는 원인과 이 원인을 끊을 수 있는 방법과 열반의 길로 제시되는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의 원리를 제시받지는 못하였다.
불교적인 입장에서 13층의 영화를 살펴보았고. 많은 여운을 남겨주는 영화로서 별점은 4점대로 매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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