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서원 옥산서원은 경상북도 경주시(慶州市) 안강읍(安康邑) 옥산리(玉山里)에 있는 서원으로서 1572년(선조 5) 경주부윤 이제민(李齊閔)이 도내 유림들과 더불어 이언적(李彦迪)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것으로, 1574년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순 정일(丁日)에 향사(享祀)한다. 1871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 때에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사적 제154호.
왼쪽에 보이는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은 《논어》 <학이(學而)>에 나오는 <불역락호(不亦樂乎)>의 뜻을 취한 것이다. 가운데 측면으로 보이는 것이 무변루(無邊樓)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2층누각인 무변루가 있는데 원래 납청루(納淸樓)이던 것이 노수신(盧守愼)이 주돈이의 <풍월무변(風月無邊)>을 취하여 고쳤다. 2층 양측에 협실, 1층에 통문(通門)이 있다.
서원 전면에 강학처소(講學處所)를 두고 후면에 사당(祠堂)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이다. 경내의 건물은 사당인 체인묘(體仁廟), 강당인 구인당(求仁堂), 재사(齋舍)인 민구재(敏求齋)·은수재(誾修齋), 무변루(無邊樓)·신도비각(神道碑閣)·경각(經閣)·문집판각(文集板閣) 등이 있다.
전면의 옥산서원 편액은 1839년 김정희(金正喜)가 다시 쓴 것이라 한다.
옥산서원 뒤편 중앙에 구인당이있고 양측에 양진재(兩進齋)· 해립재(偕立齋)가있다.
독락당
독락당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봉사(奉祀)하고 있는 옥산서원(玉山書院)의 안쪽계곡에 있는 그의 고택(古宅) 사랑채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인 단층 팔작 지붕집으로, 평면은 서쪽에 정면 1칸, 측면 2칸인 온돌방을 두고, 그 동쪽의 정면 3칸, 측면 2칸에는 전부 우물마루를 깔아 사랑대청으로 했으나, 현재 동쪽에는 마루 가운데 온돌방의 중앙 기둥처럼 네모기둥이 서 있고 주선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도 서쪽 방처럼 벽체를 치고 방으로 꾸몄던 것으로 생각된다. 막돌허튼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원주(圓柱)를 세웠으며,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를 얹고 쇠서 하나를 내어 단익공(單翼工)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간살은 오량(五樑)으로 앞뒤의 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걸고, 이 위에 양봉형(樑奉形)의 대공에 소로를 짜넣어 종보를 받쳤으며, 다시 이 위에 양봉형의 동자기둥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그러나 측면 벽체 위에서는 단순한 동자기둥으로 대공을 만들어 종도리를 받쳤으며, 직선재로 된 소슬합장을 둔 것은 아산맹씨행단(牙山孟氏杏壇:사적 제109호)의 모습과 비슷하다. 온돌방과 대청 뒷면과 측면에는 띠살창호를 달았으나, 앞면 3칸은 창호 없이 모두 개방했다. 보물 제413호.

정혜사지십삼층석탑 (淨惠寺址十三層石塔)
옥상서원과 독락당에서 멀지 않은 곳의 안강읍(安康邑) 옥산리(玉山里)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높이 5.9m, 기단폭 2.1m. 신라시대 작품 가운데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석탑이다.
기단은 단층 토축(土築)으로 고태(古態)를 보이고 있으나, 이것이 어느 정도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위에 초층 옥신(屋身)을 받치기 위한 4석으로 된 2단의 굄이 마련되어 있다. 특히 초층 옥신은 규모가 크며, 네 모서리에 4각형 돌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양쪽으로 우주(隅柱)에 붙여 작은 기둥을 세웠으며, 그 위에 인방(引枋), 아래에 하방(下枋)을 걸치고 그 사이의 공간은 내부가 꽉 막혀 있다. 초층 옥개석은 옥석과 받침이 별석으로 옥석은 8석, 받침은 4석으로 되어 있으며 받침수는 3단이다. 옥개받침은 각층 3단으로 초층에서와 같고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탑은 보기 드문 13층일 뿐 아니라 1층에 비하여 2층 이상이 일반적인 체감(遞減)의 비례를 무시하고 줄어든 점 등으로 당시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국보 제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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